둘째날이다. 어제는 한밤중에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와서 잠이 부족했는데 잠도 푹 자고 마음의 여유도 생겨 몸이 좀 가볍다. 늘 보고 싶었던 진시황의 병마용갱을 방문하는 날이다. 가이드에게 중국의 황제를 몇명 말해보라하니 진시황을 먼저 꼽는다. 그리고 측천무후도 들어간다. 생각보다 측천무후가 나라 경영을 잘한 모양이다. 여기에 측천무후의 묘가 있다는데 가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다.
화청지를 가보라는 권유가 있어 기대하고 와보니 화청궁이다. 전에는 연못만 있었는데 궁궐을 복원하여 궁전이 되었다. 도착하여 먼저 만나는 것이 현종과 양귀비가 함께 춤추는 조각상이다. 스토리가 있는 역사가 지금은 좋은 자원이다.
궁궐 안으로 들어가니 몇개의 연못이 보인다. 어기서 현종과 양귀비가 노닐던 곳인 모양이다. 양귀비를 치니 양귀비 꽃이 먼저 뜨는 걸 보니 정말 양귀비는 예뻤던가 보다. 안내원에게 양귀비의 진영(眞影)이 있느냐고 물으니 없단다. 첨에는 있었겠지만 나라를 무너뜨린 여인이니 후세에 모두 없앴으리라 생각된단다.
양귀비의 본명은 양옥환이다. 처음에는 현종의 18번째 아들의 부인 즉 며느리로 들어왔는데 현중이 아끼던 무씨가 죽은 후 양귀비에 반해서 며느리를 빼앗았단다. 현종과 나이차가 35세나 되어 양귀비는 나중에는 궁중의 외로움으로 안록산과 가까이 지내며 안록산에 힘을 실어줘 권력다툼으로 안사의 난이 일어나고 쫓겨다니다가 목숨이 위태로와져서 반란군이 현종을 압박하여 양귀비를 목매서 죽게한다. 아픈 사랑의 이야기이다. 스토리텔링으로는 멋진 내용이다.
양귀비가 목욕한 곳이란다. 몇개가 있다. 발굴하기도 하고 고증에의해 중건하기도 했단다.
화청궁 내의 양귀비의 상이다. 얼굴이 제법 통통하다. 당나라 미인들은 얼굴이 통통해야 미인대우를 받는단다.
역사도시 시안답게 양귀비 역사를 보고나니 진시황의 병마용갱이 기다린다. 입구에 진시황의 동상이 크게 폼 잡고 있다. '영정'이 진시황의 이름이다. 참 영명했다고 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대륙을 지금껏 한나라로 유지되도록 한 황제 그래서 시(始)황제라 불린다.
병마용갱은 3개의 전시실로 되어있다. 1전시실이가장 볼 만한 병용이 많이 있고 2,3실은 모형 등도 있어 실감이 더 난다. 박물관도 별도로 있다. 1전시실의 병마용은 정말 대단하다. 38년간 70만명을 동원하여 사후에 묻힐 릉을 조성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미발굴 병마용이 많은데 가이드 이야기로 발굴기술의 부족 또는 병마용이 채색되어 있는데 발굴하면 산화되어 탈색되므로 그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기다리는 까닭 등으로 분석한다.. 동원된 인력을 보면 지금의 시각으로 그때의 인권을 생각하면 그때는 인권의 개념이 없었으리라....
1전시실의 병마용이다.
1974년 우물을 파다가 병마용을 발견한 계기가 된 곳이다.
3전시실이다. 앉은 병마용은 아주 특이한 것인 모양이다.
마차를 몰고 가는 진시황, 모형인데 이런 모습이 발굴된 모양이다.
높이 100미터 정도의 산을 진시황이 묻힌 황릉으로 추정한단다. 누구도 그 산에 오르지는 못한단다. 곳곳에 수은이 발견되었다는 기록을 볼 때 시황제는 불로장생을 위해 수은을 너무 먹어 수은중독이 되지 않았나 하는 분석도 있다. 앞으로 50년간 발굴 계획이 없단다.
해가 지고 화청지에서 장한가 공연이 펼쳐진다. 레이져, 강철밧줄, 뒷산인 여산을 활용한 쇼가 장관이다. 낮에는 지하에 좌석이 감춰져있다가 밤이 되니 편안한 좌석으로 펼쳐진다. 여산을 이용하여 밤하늘의 별빛을 만드는 것도 장관이고,, 우리도 운이 좋아 좋은 자리에 배정받아 편하게 볼수 있었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 - 양귀비가 목매어 죽은 후 다시 나타나니 현종이 만나려고 하나 피하는 양귀비의 이야기...
장한가무쇼는 3월부터 10월까지 한단다. 추위때문에 .. 옥룡설산의 인상여강쇼도 대단했는데 중국에 이런 쇼가 10개정도 있단다. 인구의 대국이니 외국관광객이 아니라도 이런 연극공연이 가능하다.